
글 쓰는 법필리핀 전화영어 선생님 앤은 주식시장을 분석하는 증권 애널리스트였다. 두 달 정도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써야 할 것이 정해져 있거든. 삶은 불확실한데 해야 할 게 정해져 있다는 게 좋았어. 그런데 몇 년간 이 일을 반복하니 삶은 확실해졌지만, 난 오히려 불확실한 것을 원하게 되었어. 그래서 나에 관해 쓰기 시작했지. 나에겐 나만큼 불확실한 게 없었거든.”25년 전 내 글이, 파도에 밀려오늘 나에게 실려온다면그녀는 자기 전에 끄적이던 글을 한 연재 플랫폼에 업로드했는데,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본명 대신 팬네임을 고수한 그녀에게 이유를 묻자 “내 이름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라고 답했다. 하지만 앤은 1년도 되지 않아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신상이 털리고,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고 스토킹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했어. 계정과 내가 쓴 글을 전부 지워버렸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다들 만류했어.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그럼 이제 글 안 써?” “그곳을 떠나고 나서 글을 더 잘 쓰게 되었어. 전화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시간 날 때 끄적이고 있어. drafts가 아주 많거든.” 난 draft가 뭐냐고 물었다. 앤은 drafts는 ‘끝내지 않은 작업들’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더 묻고 싶었지만 앤은 더 이상 자신이 떠나온 과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오늘의 데일리 뉴스 '1997년에 분실된 레고가 영국 해변에 쓸려온다(Lego lost in 1997 still washing up on UK beaches)'를 함께 읽었다. 바다에서 떠다니는(drift) 레고 조각에 관한 이야기였다. 컨테이너를 싣고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항해하던 화물선이 폭풍을 만나 컨테이너를 바다에 떨어뜨렸는데 그 안에 수만 개의 레고 조각과 장난감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25년이나 지난 사건인데, 레고 조각들은 여전히 인근 해변에 떠밀려오고 있다. 레고 조각들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도 가 닿았으며 프랑스, 영국까지 헤엄쳐가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표류(drift)라는 단어와 끝나지 않은 작업(draft)이라는 단어가 겹쳐 떠올랐다. 앤이 놔두고 온 방대한 글이, 폭풍을 만난 화물선에 물속에 빠트린 수많은 레고 조각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거 글로 써도 재밌겠어."어떤?"자신의 글을 바다 한가운데서 잃어버렸으나 25년 뒤, 글의 조각들이 해변에 나타나다."내 얘기야?"응."나는 답했다. draft와 drift를 사용해 운율을 만들 거야. 끝내지 않은 것이 표류하여 돌아온다. draft drifts. 라임 어때?"내 글이 장난감이 되어서 해변에 나타나면 땡큐지. 근데 이 기사에 보면, 25년 전에 사라졌던 작은 용 모양의 레고가 새것보다 더 새것처럼 반짝였다고 적혀 있네."어떻게 더 새로워질 수 있냐. 너무 오래 방황하면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거냐……." 방황은 일종의 긴 목욕인지도 모른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트레이시 윌리엄스라는 여성은 매일 아침 개와 함께 영국 남서부 콘월 해변을 산책하며 레고 조각을 줍는다고 한다. 그녀는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린 시절의 장난감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끝났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도 이것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 멋있는 것 같습니다.” ‘낡은 책이 초콜릿 향을 낸다’는 것에서 시작한 ;※아래 일기는 영어로 쓴 일기를 chat GPT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나는 수년 동안 전화로 영어를 배웠습니다. 한밤중 공허함을 느꼈을 때, 충동적으로 수업을 예약하곤 합니다. 필리핀 선생님은 내게 ‘오래된 책의 냄새는 무엇이고 왜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읽어주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책의 냄새를 좋아하는 이유를 연구하는 런던대학의 실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연구자는 참가자들의 눈을 가리고 책 냄새를 맡게 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이 초컬릿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리고 몇몇은 바닐라나 커피라고 유추했습니다. 책과 초컬릿은 ‘리그닌(목질소)’이라는 화합물을 공유합니다. ※이는 참가자들이 책을 초컬릿으로 오인한 원인을 밝혀줍니다. 책은 낡아가는 과정에서 리그닌을 방출합니다. 이 리그닌은 초컬릿 냄새와도 비슷하죠. 책이 닳아갈 때 초컬릿 냄새가 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아름답고, 어떤 면에서는 슬픕니다. 나이가 들면 초컬릿 냄새가 나는 생물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초컬릿 냄새가 난다면 덜 불행하고 외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늙었을 때 내게서 초컬릿 냄새가 난다면 사람들이 더 자주 방문할 것입니다. 그리고 늙어서 죽게 되면, 장례식장에 초컬릿 냄새가 가득할 것입니다. 그럼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사람도, 죽은 사람도 덜 슬플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내가 얘기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 내가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지 잊어버린 것 같아요…. 아, 필리핀 영어 선생님은 나더러 책벌레인지 물었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인정했습니다. 최근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을 영어로 읽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인터넷으로 검색하더니 책의 pdf 파일을 다운로드했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그것을 나와 공유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책과 정확히 같은 책이었습니다. 유일한 차이점은 페이지들이 상당히 닳아 있었다는 점이죠. 사람이 직접 스캔해 업로드한 책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것을 어디서 얻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책을 다운로드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실제로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90%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거 불법 아니야?” 나는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답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것은 합법이야. 왜냐하면 출판사들이 직접 책을 업로드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음모이어야 해. 반드시 음모여야 합니다. 책에서 초컬릿 냄새를 더 이상 맡을 수가 없었습니다. 썩지 않는 책에서는 초컬릿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요. - 문보영 시인 - 위 글들은 시인이 필리핀 영어선생님과 잠결에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칼럼: 문자문화 유적지에 선 사유의 기둥신문 용어로서 칼럼(column)은 특별한 데가 있다. 단어의 원래 뜻은 원주 또는 두리기둥이다. 그 이미지에서 신문 용어가 탄생했다. 영자신문에서 세로로 길게 뻗은 난의 배열을 지면 레이아웃 방식으로 사용했는데, 그것이 원주의 이미지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칼럼은 이런 레이아웃 방식의 각 난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그 난에 실린 글 역시 가리키게 되었다. 우리말 신문은 초기에 세로쓰기를 했기 때문에 지면의 난은 오히려 가로로 누운 기둥의 형태처럼 보였다. 1980년대 말부터 일간지들이 본격적으로 가로쓰기를 도입하면서 우리 신문도 세로로 된 지면 난을 갖게 되었다. 글쓰기 양식으로서 칼럼이라는 용어도 이와 더불어 널리 쓰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칼럼은 라틴어 ‘콜룸나’(columna)에서 유래한다. 둘레와 높이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원주를 뜻한다. 이는 콜룸나와 같은 뿌리를 지닌 단어 ‘콜루멘’(columen)이 높은 곳, 꼭대기, 절정 등을 의미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석조 건축의 전통이 깊은 고대 서구 문명에서 원주는 실용적으로도 중요했고, 상징적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이는 그리스 로마 건축에서 열주를 사용한 신전과 공공건물 그리고 단일 원주로 된 공적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두리기둥의 중요성은 서구 역사를 배우면서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토스식 등 기둥머리의 양식까지 각별히 공부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에도 남아 있다. 수천년의 세월이 흘러 유적으로 남아 있는 석조 건물터에서도 우리는 두리기둥의 특별함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신전과 로마의 공회장(Forum)에서뿐만 아니라, 그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중해 연안의 모든 유적지에서 경험할 수 있다. 폐허가 된 석조 건물에서 벽과 지붕은 사라졌어도 원주는 우뚝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수직으로 서서 죽은 듯한 자태는 숭엄하기까지 하다. 고대 유적지에 수직으로 서서 죽은, 그래서 의미가 소생하고 있는 칼럼들은 유산일 뿐 아니라 뭔가 새로운 시작의 동기가 된다. 이런 특별한 동기부여는 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가 심취했던 ‘폐허의 미학’과 ‘유적의 시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로마의 유적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하자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 말이 함의하는 것은 과거의 유산에서 “적어도 어떤 비범한 개념을 획득하는” 것이며, “자신을 속속들이 개조하려는 재생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느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새로 시작한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신문 용어로서 칼럼이라는 말에 담긴 역사적 흔적을 살펴보았다. 디지털 미디어가 대세인 오늘날 칼럼과 칼럼니스트라는 용어는 훨씬 폭넓게 쓰인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매체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글의 소재와 주제도 그만큼 다양해졌다. 글의 형식과 내용에서 모두 열려 있다. 일단 원주의 이미지를 지닌 형식이 없다. 지금은 세로 가로 관계없이 일정 크기의 외곽선으로 정형화한 난에 실린 글이라면 칼럼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사전에서 정의하는 전통적 의미의 칼럼, 곧 “신문, 잡지 등에서 시사, 사회, 풍속 따위에 관해 짧게 평하는 정기적 기고”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문 칼럼’은 그 고유의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다. 종이 신문은 현대사에서 수백년 동안 주류 매체였지만, 디지털 문명의 도래와 함께 지난 30년 동안 소멸의 위협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이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영원한 것 없는 문명사적 운명일 뿐이다. 의지대로 되지 않는 운명임을 깨닫는 비극적 품위를 잃지 않으면 된다. 신문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책도 디지털 사회의 등장과 함께 종언의 경종을 계속 들어왔다. 종이에 인쇄되는 문자 매체인 책과 신문의 운명은, 과거 역사는 각기 다르지만, 미래에는 같은 길을 갈 것 같다. 책과 신문이 사망 선고를 받았다고 죽은 것은 아니다. 죽어가고 있을 뿐이기에. 곧 살아 있다. 사람들은 문명사적 변화의 초기에는 그 효과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모든 변화에 수반하는 과도기의 의미와 그 활용에 대해서는 무심할 때가 많다. 과도기가 의외로 길 수 있다는 것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과도기가 어느 정도일지 정확히 예견할 수 있는 미래학자는 많지 않으리라. 어쨌든 그 시기는 언젠가 이별하게 될 책과 신문이 남기고 갈 보석 같은 말을 직접 들을 마지막 기회다. 어떤 존재든 소실의 순간이 가까워지면 들어둘 만한 소리를 많이 전하는 법이다. 신문은 보도 기사처럼 소식을 전하기도 하지만, 책의 글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글 또한 싣는다. 칼럼이 바로 그것이다. 칼럼은 다양성의 보고다. 생물 다양성처럼 문화 다양성도 문화 환경에 필수적인데, 신문은 칼럼의 소재와 주제뿐만 아니라 필자의 다양성을 통해 자기 스스로의 다양성 또한 성숙시켜왔다. 그러면서 뉴스의 대중 전달이라는 ‘넓이의 역할’에 독자의 사유와 감성을 자극하는 칼럼이 지닌 ‘깊이의 역할’을 더해왔다. 짧지만 함축적이며 의미의 밀집도가 높아 돌기둥처럼 단단해진 칼럼은 세월의 풍화를 덜 겪고 오래 남을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자 피에트로 벰보는 “작가는 오로지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니 작가 자신의 사후에 태어나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는 모험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시대에 신문 칼럼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고전적 의미의 작가여야 할지 모른다. 오늘날 뉴 미디어의 입장에서 신문을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라고 부르면서 이미 낡은 과거의 유산이라고 규정한다. 나는 레거시 미디어를 오히려 ‘미래의 유산’을 남길 매체라는 뜻으로 새긴다. 문명사적 과도기에 스스로 소실을 인정하는 비극적 품위를 잃지 않고 성실히 노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이 흘러 미래 세대는 문자문화의 유적지에 수직으로 서서 죽은, 그래서 의미가 소생하는 칼럼들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도 신문 칼럼니스트들은 미래 유적을 남기는 일을 하고 있다. - 김용석 철학자‘늙은’ 칼럼니스트의 심사젊은 나는 기자로, 문학평론가로 행세하면서 기사며 문학작품 비평을 쓰는 동안 이런저런 매체로부터 청탁을 받고 또 갖가지 글들을 썼다. 정치와 현실에 대한 묵직한 글이기도 했고 회상이나 일상에의 잡상에 이르는 가벼운 글이기도 했다. 나이 들기를 넘어 늙어가면서 내 직업적 글쓰기의 테두리는 줄어들고 때마다 자리마다 느끼고 생각나는 일들도 좁아졌다. 그런 참에 더러 온 청탁이 정기 칼럼이었고 ;는 아예 기명의 ‘칼럼’을 부탁해왔다. 기왕의 글쓰기 수준과 책임을 한 급 올려주는 느낌이어서 영예롭게 여겨야 했고 그렇게 그 난을 채운 지 어느 사이 9년째에 이르렀다. 그런 참에 문득 ‘칼럼’이란 글의 성격, ‘칼럼니스트’로서의 자세를 물어와 나는 당혹했다. ‘칼럼’ 필자로 글을 써왔지만 정작 ‘칼럼’이 어떤 유의 글을 가리키는지 별다른 의식도 없었고 그 글을 쓰는 품새를 특별히 가다듬지도 않아온 것이다.정신이 퍼뜩 들어 문학적 장르로 규정된 것도 아닌 ‘칼럼’의 정체를 새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의 ‘column’에는 첫 뜻 ‘기둥’에 이어 ‘원주 모양의 물건’이란 풀이, 군대의 ‘종대’가 있고, 추가로 ‘(신문 등의) 난’, ‘(신문의) 특약 정기 기고란’이라 하여 비교적 분명한 풀이를 주고 있었다. 그 풀이에는 ‘기둥 모양에서 세로로 긴 페이지의 난’으로 그려진 도표도 있었다. 그래서 대충 신문이란 나날의 소식을 알리는 특정한 매체, 정기적이란 시간성, 특약이란 관계로 이루어진 글쓰기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대체로 그런 틀로 ‘칼럼’을 써왔던 것 같긴 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공공연한 의미로 내 뜻을 넓혀 읽는 이들의 공감을 얻을지, 그러려면 어떻게 글줄을 늘이고 구성을 짜야 할지 고심하며 정해진 마감과 글의 길이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두 달에 한 번의 그 고역에도 나는 이 독특하다고 해야 할 장르의 글쓰기를 즐겨왔던 것 같다. 매일의 뉴스를 보도하는 매체이기에 그 주제는 시의성을 고려하며, 정한 날짜까지 원고를 보내야 하는 약속을 오히려 달가워했다. 나는 바로 이 칼럼 쓰기, 쓰고 고치고 바꾸고 줄이고 하는 그 글들과의 씨름에 버릇되면서 내 의식의 결기를 다잡고 거기서 빚어질 긴장과 씨름했다. 글은 그 글 쓸 즈음의 시의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무엇을 써야 할지 주제와 줄거리를 찾고 고르고 구성을 하는 절차를 어느 문학적 글쓰기나 시사적 기사 쓰기 못지않은, 아니 칼럼의 성격에 어울려야 할 제약을 지키기 위해 더 심하게, 사유들 속을 부지런히 헤매야 한다. 그런데 그 외형의 한계가 주는 내면적 자유가 즐거워오는 것이다.나는 사건의 추이를 추적하는 기사나 해설, 혹은 사설처럼 객관적 주장이나 규명으로 엄격하게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사건과 사태에 대한 내면의 사유나 회상을 ‘수필’이란 용어처럼 흐르는 대로의 자유로운 생각들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었다. 설정한 주제는 큰 틀에서 짚은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사유와 접근은 부드러운 사고의 진행에 따라 풀어간다는 것, 그것은 시나 소설 같은 개인적 상상의 분방을 유보하는 대신 익명의 공적 주장이나 설명이란 비개인성에 빠지지 않고, 바로 나이기 때문에 생각하고 쓰는, 또 쓸 수 있는 자유를 가지면서도 그만큼 객관적 공론적 성격을 버리진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새 책, 옛 기록을 찾고 묵은 기억들을 헤집어내며 이 생각과 저 사건을 맺고 거기서 보탤 것 뺄 것을 정리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러니 글의 주제가 당시의 현실적 상황에 매이지만 그 접근 방법과 태도는 탄력적이며, 글의 내용은 통개인적(通個人的)이고 공론적이지만 글의 형태와 쓰기는 유연하고 사유와 추리는 필자의 개인적 특성과 자유로움을 보장해줄 것이었다. 제약 속의 자발성, 한계 속의 제멋대로임을 열어주는 ‘칼럼’의 형태는 그래서 노년의 내 바람에 어울려가는 것 같다. 젊을 때의 나는 거창하게 ‘문명비평가’일 수 있기를 꿈꾸었다. 한갓 소망으로 그치고 만 것은 분명하지만, 내 시들어가는 마음을 토닥거리며 움직이는 세상과 침잠하는 의식 간에 다리를 놓아 여전히 세계에 대해 긴장하고 까다로운 현실을 고려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이 ‘칼럼’ 쓰기 덕분이다. 몇 해 후의 앞날도 기대할 수 없는 낡고 늙은 내게, 그것은 고역이면서 즐거운 보람이고, 덧없는 일이되 의미 있는 고민을 치른다. 그 살아 있음의 확인을 위한 노력이, 모든 것을 정리해 마쳐야 할 나이임에도 여전히 미련으로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리라. (김병익 | 문학평론가) 글과의 생애 엮기 숙제로 작문을 내주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3 때 처음 내 글이 교지에 인쇄된 것을 보았고 고등학생 때 비로소 학생지와 지방신문에 ‘작품’을 발표했다. 문학이라든가 작가라는 것은 어른들의, 그것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분들의 것이고 나는 다만 우등생이어서 으레 내야 할 숙제로 원고지 칸을 글자로 메꾸곤 했다. 대학생이 되어 이미 시단에 등단한 시인을 친구로 사귀면서도 글쓰기란 내게 당연히 망외의 직분이었고 그럼에도 버릇처럼 원고지에 끄적거리기는 했다.내가 문학이란 글쓰기 세계로 발 디딘 것은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도 여러해 뒤였다. 대학 후배지만 일찍 문학판에 뛰어들어 왕성한 열정을 보이는 김현의 유혹 때문이었다. 아니, 그의 덕이라 해야겠다. 사람 사귀는 데 비상한 열정이 있었던 그는 또래 글쟁이들을 모아 ‘68문학’이란 동인지를 발간한다며 그 명단에 내 이름을 나 몰래 불쑥 넣은 것이다. 그 강요 때문에 나는 같잖은 작가론을 썼고 그 글로 나의 문학평론가 입신이 이루어졌다. 반세기 넘어 전의 어리숙한 시절 일이다.그 후의 나는 ‘문학과지성’이란 이름으로 나온 계간지의 편집동인으로 참여하고 1975년 동아일보 사태로 신문사에서 물러나면서는 실업자가 된 나를 위해 그 친구들이 엮어준 출판사에서 일해야 했다. 이때 나는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출판사를 경영해야 했고 사장 노릇이 부끄러워 작품을 읽고 쓰는 비평가로 행세하며 책 읽기-쓰기-내기의 작업을 의무감으로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그 일이 힘들고 무겁기보다 즐겁고 보람 있었던 것은 문지 동인들을 비롯한 많은 문학인, 저자들이 청진동 25평 좁은 사무실에 몰려와 떠들고 나누고 엮는 문학공동체가 되어 지식사회를 향한 유신 시절의 그 억압을 견뎌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문길의 ‘소외론 연구’, ‘광장’의 최인훈 전집을 엮으며 조세희의 ‘난장이’ 연작에 공감하는 글을 쓰고, 황동규 정현종 시집 간행으로 당대의 지식인 작가들의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그 억압의 시대에 공감과 토론이 있는 한줄기 숨 쉴 자리를 펴는 보람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서 25년, 나는 2000년의 21세기를 맞으면서 이 새로운 시대는 후배들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스스로 그 자리를 물러났다. 그리고 집도 서울에서 벗어나 신도시로 옮기면서 ‘자유 지식인’이란 멋진 이름으로 자칭하며 한가를 누린 지 이미 사반세기가 되어간다. 물론 점점 줄어드는 책 읽기와 더욱 게을러지는 글쓰기, 그리고 이제 그 힘이 다 닳았음을 자각하게 되는 80대 후반에 이르러 나 자신의 생애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그 반성은 부끄러움과 아쉬움만이 아니고 다행히 내 나이를 다독거리며 내가 살아온 시대의 증인으로 자부해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우선 이 시절은 민주화가 진행된 시대였다. ‘자유민주공화국’의 명의에도 불구하고 유신시대의 포악한 강제, 군부정권의 독재, 그래서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정서와 정신이 고통당해야 했다. 그 현실 속에서 글쓰기와 읽기, 생각과 상상, 표현과 출판의 자유를 위한, 향한 지적 용기는 당당했다. 작가와 저자들은 한계 속에서나마 사상의 자유란 헌법적 명분을 활용했고 네오마르크시즘의 출판을 통해 평등의 이념을 수용하며 이념과 정서의 유연성을 추구했다. 군부 독재 체제 속에서도, 그러니까 정신과 표현의 속살은 활달하게 움직거릴 수 있었고 그것이 80년대의 억압 현실을 벗어나 90년대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그 실제를 이루며 사상적 학문적 관용과 정서적 생동을 키웠고 세기가 바뀔 즈음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현실에서나 사유에서 활달한 개방 체제로 열어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의 글쓰기는 이 변화의 시절을 아주 현명하게 추진하고 또 수용했다. 금서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서가 밑 거래로 그 책들은 독자들 손으로 전달되었고 미국과 서구로 에둘러가며 현실 비판과 미래 지향의 대화를 풀어갈 수 있었다. 오늘의 출판의 자유, 그 실제가 되는 사상의 자유는 그런 노력 끝에 얻고 이룬 것이다. 우리는 격한 체제 혁명을 치르지 않고도 책과 문자의 자유를 확보해갔다. 그 과정은 돌아보면, 기특한 우리 민주화의 진전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20대 후반부터 시작된 내 글쓰기 생애는 이 난감한 시대적 전개 과정을 내장하고 있다. 신문기자 때 익힌 검열 회피술로 출판사에서 원고들을 직접 교정보며 편집해온 덕에, 우리는 판금 조처를 피할 수 있었고 압수의 손실도 당하지 않았다. 신문기자로 익힌 글 수작으로 그 삼엄한 유신 시절에 마르크스에서 시작하는 정문길의 ‘소외론 연구’, 경제적 양극화를 부각하는 조세희의 ‘난장이’ 연작들을 간행할 수 있었다.자유로운 시대에 그 다급해야 했던 억압의 시절을 회상하는 일은 즐겁다. 검열에서 피하기 어려운 책을 내기 위해 찾아야 했던 기교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된 이 평안함. 나는 중년 이후 그 평안을 즐길 수 있었고 그걸 만끽하며 내 글쓰기, 출판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 삼엄한 세상을 무사히 끝내게 된 것은 그래서 여간 큰 행운이 아니었다. 그런 다행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뜻을 같이한 많은 친구들 덕분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밀고 당기고 받쳐준 지식공동체를 이룸으로써 고통과 고난의 시절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의 2024.1. 내 노년은 그 다급한 시절의 아슬한 과정들을 감상하는 일로 즐겁다. 굳이 회오나 겸손을 새삼 끌어들일 필요는 없겠다. 젊은 한때의 힘든 시절을 돌아보는 느긋함으로 세월과 변화를 음미하며 그 여유를 즐긴다. 이 한겨레 칼럼을 나는 그 연장선에서 내 생애에서 느낀 그 편안한 긴장감, 자유로운 소곳함으로 써왔다. 그러기 10년을 넘은 이제, 그 묵은 글발도, 그 낡은 생각과 분위기도 달라져야 할 것을 마침내, 당연히 깨닫는다. 그동안 내 수줍은 글을 만져 펴주신 한겨레 편집진과 숙맥 같은 그 글들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이 글쓰기를 마치며 삼가 드리는 감사와 감회의 인사는 그 새로움을 향한 나의 소망과 기대를 품고 있다. - 김병익 | 문학평론가노년의 책 읽기복거일이 기증한 그의 다섯권짜리 장편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을 보기 시작하다가 내 정신은 그 주인공 이승만으로부터 엉뚱하게 내 소년기의 옛 시절로 빠졌다. 이 소설의 처음이 내 출생 시기와 비슷한 탓이었으리라.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어쩌면 시험 볼지 모른다고 갓 중학생이 된 형이 내 일본어 이름과 학교 이름을 한자로 가르쳐주어 그걸 익히던 일이 회상된 것이다. 그리고 열살 때던가, 누이가 빌려온 소설책에서 재미난 중간제목이 눈에 띄어 보기 시작해, 그 끝을 먼저 본 뒤 앞으로 돌아가 다 본 것이 내 성인도서의 첫 읽기였다. 저자며 책 이름은 당연히 잊어버렸지만 당시 유행하던 이른바 ‘대중소설’이었고 내 책읽기가 거기서 시작했기에, 그 후 청소년들이 어떤 책이든 읽기만 한다면, 아이들이 재미만 찾아 혹은 연애소설 같은 책을 본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의 핀잔에 동조하지 않았다. 사회인이 되어 신문사 문화부에서 일하면서 문학과 학술, 출판을 담당한 때문에 나는 책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떤 건 건성으로 차례와 서문으로도 대강 짐작하며 읽은 척하면서 내가 아는 책들은 더 늘어났다. 신문사에서 물러나 시작한 작업이 출판업이었기에 만들고 얻고 산 책들이 높이 쌓여갔다. 마침 1980년대, 한 전문대 도서관이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아끼는 책을 보관한 책장 하나만 빼고 제목도 보지 않은 채 모두 넘겨주었는데 7천권, 한 트럭분이었다. 그리고 23년 전 신도시로 이사할 때 이 비슷한 책 정리를 한번 더 치렀다. 내가 사고 얻은 책들은 물론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일반 서점 도서들이어서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다.그래도 아까워한 적도 있었다. 해방을 맞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중1이었던 형이 내게 넘겨준 것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이 잡지 ‘소학생’이었다. 타블로이드판 주간이었다가 곧 4×6배판 어린이 월간지가 된 이 잡지를 나중에 창간된 ‘소년’과 함께 나는 열심히 구입해 보고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6학년, 6·25 피란에서 돌아와 그 잡지들이 불탄 것을 보고 2층 우리집이 사라진 것보다 더 섭섭해했다. 그 발행사 이름에 든 ‘을유’가 무슨 뜻인지 내내 궁금해하다가 한참 후 해방된 해인 1945년 을유년에서 따왔음을 알게 된 내 어리석음을 훗날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님께 고백해 반가운 웃음을 산 적이 있다. 중학교에 진학해 이번에는 ‘학원’을 보고 모으는 재미가 유달랐는데, 이제하, 유경환을 비롯한 소년 문사 작품들을 지방의 어린 눈으로 무척 부럽게 바라보았다. 10년 동안 일간지 문화부 기자 노릇을 하며 최인훈 홍성원에서 최인호에 이르기까지의 소설가와 황동규 마종기 김영태 등 시인들과 어울리며 평론가 김현의 제의로 김치수 김주연 등 대학으로는 후배이지만 문학으로는 선배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계간 ‘문학과지성’을 간행하던 때의 보람은 당연히 유다른 것이었다. 우리보다 몇해 앞서 계간지를 만든 백낙청 염무웅의 ‘창작과비평’과 달리 이른바 순수문학을 지향했기에 우리는 ‘창비’와 다른 ‘문지’의 문인 블록을 이룰 수 있었다. 때마침 문학의 참여/순수, 리얼리즘/모더니즘으로 맞서 논쟁이 일던 참이어서 두 잡지는 문학의 존재이유와 그 창작방법론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이게 되는 참이었다. 이즘에 접해야 할 책과 글들은 왜 그리 까다롭고 어려웠는지. 그러면서 내 젊은 시절, 중년 시절은 시대의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유신과 민주화 과정을 헤쳐 나가야 했다. 그러면서 25년, 서기 2000년이 되는 해, 나는 새로운 세기야말로 문화에서 문명으로 넘어가 디지털 세대의 것으로 접수될 것으로 판단하고 우리 아날로그 세대는 뒷전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출판사와 잡지 일들을 후배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자유 지식인’ 생활로 들어갔다. 문단의 현장에서 물러나고 지식사회의 변두리에서 서성거리면서도 김치수 말마따나 ‘정년이 없는 글쓰기’의 시간만은 유예하고 싶어 자습으로 컴퓨터 글치기를 익히며 잡문이 섞인 문학비평도 쓰고 신문 칼럼도 기고하는 등 글쟁이의 짓거리는 계속했다. 그것이 ‘짓거리’일 것이, 내 글쓰기가 멋대로의 자유로움을 누린 때문이고 그 자유로움은 노년의 책임 없는 책읽기로 가능했다. 내게 온 청탁이 까다로운 원전의 인용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체계적인 논리를 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저 읽고 거기에 얽힌 생각을 늘리거나 기억을 이어 얽으면 편집자들은 노인의 글이니, 하고 허용해주는 듯했다. 나는 이 방만한 작문을 좋은 말로 ‘자유로운 글쓰기’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 ‘멋대로의 책읽기’ 덕분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덕에, 명색 ‘문학평론가’였지만 실제는 잡문가였고 내 책읽기는 카뮈와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몰아 읽거나 황순원부터 최인호로, 식민시대사에서 현대과학사로 그리고 그 과학자들의 스릴 넘치는 탐구의 과정들을 제멋대로 덤벙거리는 잡독이었다. 그 잡독이 나이 들수록 과학과 과학사 이야기로 모이는 것이 스스로도 흥미롭다. 이해도, 설명도 할 수 없는, 더구나 현대과학의 정밀한 논리와 체계를 짐작도 못 하면서 그런 유의 책에 매달리고 있는 내 늙마의 취향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당긴다’는 호기심 많은 청소년기의 연애 심리로 설명될 수 있을까. 나이는 목에 차고 능력은 발등으로 내려앉아 의욕이 바닥난 이제, 새삼 무슨 엄두를 낼 것인가. 그래, 드디어 ‘물로 씌어진’ 내 이름의 작고 여린 몸에 어울리게 처신할 단계에 이르러 조용히 뒤칸 허물 감출 자리로 옮겨야 할 것이었다.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세상이 펼치는 새로운 모양들을 구경하며 조용히 순명하는 것, 그 뜻과 형상을 이해 못 하는 대로 바라보고 눈으로나마 챙기는 것, 그것이 이제의 내 책장 앞에 차려진 그래도 음전한 자리이겠다 싶어진다. 생애는 짧고 사연은 어설픈데 마음은 한스럽고 몸은 허술하다. 늙고 낡은 정신에 다가오는 책들을 만지작거리며 겉핥기로 얻고 속내 없이 잊어버리고 마는 속절없는 내 80대의 독서는 이 노쇠의 자리에서 뒹구는 시간과 함께 헛된 망령으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이 나이의 내게 책이 줄 것이란 허망의 소회로 그칠 뿐인데…. - 김병익 | 문학평론가詩를 낭독하던 토요일 나카 간스케의 소설 '은수저'./정수윤중학생 때 국어 선생님은 주번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토요일 수업 전 칠판에 적어두라고 했다. 선생님이 들어오면 주번이 일어나 시를 낭독하고 함께 음미한 후 수업을 시작했다. 나는 그때 주번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어서 내가 고른 시를 모두와 나누고 싶어서. 집에 삼중당 문고 시집이 몇 권 있어서 두어 달 전부터 고르고 골랐다. 남몰래 혼자 낭독해 보기도 했다. 다들 내 안목을 칭찬해 줄까? 내가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까? 몇 해 전 나카 간스케의 ‘은수저’라는 오래된 소설을 번역한 일이 있다. 아이가 어렵게 연 서랍 속에서 작고 그리운 숟가락 하나를 발견하면서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그 숟가락은 아플 때 이모가 정성스럽게 약을 떠먹여 주던 물건. 이모한테 업혀 막과자 가게에 가던 일, 마을에서 미치광이 취급을 받던 아저씨가 불타 죽은 일, 이사 온 동갑내기 여자 친구와 대숲에서 숨바꼭질하던 일, 비 오는 밤 밖에 버려진 누에에게 우산을 씌워 주며 울던 일…. 소소한 유년의 기억이 촘촘한 이 책을 지방 사립학교 국어 선생님이 중학교 3년 내내 교재로 삼은 일이 한때 일본에서 화제였다. 책 한 권의 단어 하나, 개념 하나에서 생각을 거미줄처럼 퍼뜨려 학생들이 직접 낱말을 찾고 작문하며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당시 이 중고등학교가 전국에서 도쿄대 입학생이 가장 많은 걸 신기하게 여긴 기자가 취재해 보니 그런 사연이 있었다. 이 선생님에게 왜 그런 방식을 썼느냐 물었더니, “내가 처음 선생이 되어 중학교 때 뭘 배웠는지 돌이켜보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오랜 버팀목이 될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라고 했다. 나의 중학 시절 국어 선생님도 그런 맘이었을까? 해변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수업 중 지금 내게 남아 있는 단 하나의 기억. 그건 내가 고른 시를 모두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던, 어느 토요일 하루다. - 정수윤 작가·번역가글쓰기와 문장 생성세상은 매우 빠르게 비인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인간 없는 노동,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시스템 등이 사회 진보나 기술 발전의 이름으로 널리 장려되고, 칭송받기까지 한다. 인공지능을 신처럼 숭배하고, 반도체를 메시아로 삼는 최근의 '실리콘 종교'는 그 선연한 양상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비인간'(이비 펴냄)에서 기계적 비인간의 중심에는 시간 절약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가속과 망각, 효율성과 유용성이 그 특징이다. 빨리 간다는 것은 빨리 잊는 것이고, '속독'처럼 유용한 정보만 남기는 것이다."기계는 인간을 해방하지 않는다. 그것은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맞추어 일하는 물류센터 노동자처럼 인간을 시스템 부속으로 만든다. 시스템은 오히려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게 만든다."기계적 시스템은 인간 창조성, 즉 비효율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가능성을 박탈한다. 인공지능이라고 다를 리 없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몸 없는 사유, 고통 없는 지능은 불가능하다. 사유와 고통에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문장 생성과 글쓰기는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르다. 생성은 빈약한 이진법의 망령이 조작하는 대로 언어를 시뮬레이션하는 것뿐이지만, 글쓰기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해 스케치하면서 더듬어 나가는 것이다. 알고리즘의 언어는 일직선으로 배열되지만, 인간의 글쓰기는 갈팡질팡 배치된다. 문학은 시스템이 생략하고 망각한 것들을 들추어 상기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매면서 시간을 낭비한다. 그것은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거슬러 움직인다. 줄리엣은 가문의 알고리즘에 순응하는 대신 요동하는 심장의 언어를 좇는다. 친숙한 이 삶을 낯설게 여기고, 사랑 없이 살아도 괜찮을지 고뇌한다. 그녀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끝나지만, 우리는 모두 그것이 사랑의 완결이 아님을 알고 있다. 멈춘 글 너머에 무한한 단어와 문장, 의미가 잠재된 채 남았다는 것, 시작할 때만큼 많은 '말할'것이 남아 있음을 인정한다. 사랑이 우리 심장을 관통할 때마다, 매번 이 몸, 이 기분, 이 상황에 따라 다른 뉘앙스, 다른 음색, 다른 색감의 언어가 새로 태어난다. 몸은 우리를 기계적 합리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이질적 느낌, 너무 불안정해 시스템으로 귀속할 수 없는 격정으로 데려간다. 느낌과 감정은 우리를 시스템 밖으로 내보내 괴물처럼 만든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우리 안의 아직 탐구되지 못한 '비인간성'을 표현함으로써 시스템 한계를 뛰어넘는 모험이 된다. 문장 생성에 굴복해 이런 모험을 즐기지 못하는 자는 글을 쓴다고 할 수 없다.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쇼트폼과 칼럼 쇼트폼 중독이 사회 문제다. 쇼트폼은 이름처럼 짧은 영상이다. 인간의 주의를 빼앗아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어이쿠, 그만 봐야지 하고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한 ‘2025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3~69세 한국인 중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 22.7%인데, 이들은 일반 사용자에 비해 유튜브 쇼츠, 틱톡, 인스타 릴스 등 쇼트폼 플랫폼을 더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쇼트폼을 안 보려고 노력한다. 쇼트폼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중독 상태다. 그러다 쇼츠에 출연을 하게 되었다. 중독의 온상으로 보였던 쇼츠는 과연 간편한 형식이었다. 보도자료, 서평보다 빠르고 멀리 간다. 3분 남짓한 영상이라 준비 시간부터 길지 않다. 마케터에게 섭외 메일을 받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잠깐 고민하고 수락했다. 봄에 읽기 좋은 책을 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서 두세 마디 말하자 잘 편집되어 곧 공개되었다. 쇼트폼의 위력은 보는 사람만이 아니라 나오는 사람에게도 강력했다. 내가 나온 영상이 조회수와 ‘좋아요’와 댓글을 얼마나 기록했는지 자꾸 확인하게 되었다. 급속도로 퍼지는 게 기분이 좋고 홍보 효과도 뿌듯한데 가장 중독적인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봐주고 반응하는 댓글이다. 한두 개를 볼 때는 다들 너그럽구나, 하고 점잖게 거리를 두다가 또 없나, 하고 갈급해진다. 새 댓글을 확인하러 들락거리느라 긴 호흡이 필요한 당면 과제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매체가 지옥문을 열고 만 것인가? 나 때는 ‘책의 사생활’ 코너에 신간 이야기를 써서 회사 블로그에 올리는 게 홍보였다. 코너 이름이 사생활이지만 완전히 사적인 이야기를 쓸 수야 없고 공식 정보만으로 채울 수도 없었다. 이번 책은 정말 쓸거리가 없다며 편집자들은 괴로워했다. 원고를 쓰면서 뜻밖에 예리해지기도 했다. 동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도 있었다. 쇼트폼 시대에 돌아보니 그때 쓴 것은 일종의 칼럼이었다. 칼럼도 쇼트폼 아닌가. 신문 지면에 ‘기둥’처럼 자리를 차지한 데서 유래한 칼럼(column)은 애초에 길지 않은 것이 특징이었다. 취재 기사보다 짧고 글쓴이의 개성이 또렷했다. 사설과 달리 외부에서 받았고 외부에서 오기에 의견이 다양했다. 20세기에 칼럼은 다양성의 공간이었다. 뉴미디어 시대에 오자 글이라는 속성 때문에 신문은 책과 같은 편이 됐다. 요즘 칼럼니스트들은 독서율 저하로 사고력이 위기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고는 미디어의 확장 속에서 가능하다. ;에서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감각과 기능의 외부 확장”으로 정의한다. “책 지향적인 사람들은 미디어를 끊임없이 사용하는 것을 품위 없는 일”로 여기지만, “우리는 눈과 귀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동기로 미디어를 사용한다.” 텍스트 매체가 힘을 잃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철학자 김용석은 칼럼의 어원을 성찰하면서 고대 유적지에 남아 있는 돌기둥처럼 칼럼은 미래에 남으리라고 썼다. “의지대로 되지 않는 운명임을 깨닫는 비극적 품위를 잃지 않으면 된다”니 이 또한 미디어의 이해다. - 신새벽 민음사 편집자언제나 어디서나글을 쓰는 일의 장점 중 하나는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크게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네 공원이나 카페는 물론 버스나 기차, 비행기 안에서도 쓸 수 있다. 주로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기기를 꺼내 펼치기 어려운 곳에서는 스마트폰 메모 기능을 이용한다. 전기 사용이 마땅치 않거나 충전해 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수첩을 열어 초고를 적는다. 하지만 삶의 많은 일이 그러하듯이 장점은 곧 단점이 된다.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매슥거리는 속과 어지러운 두통을 참아가며 달리는 차 안에서 시를 쓴다. 떠나고 돌아오는 이들로 가득한 혼잡한 기차역, 구태여 앉을 자리를 찾아 글자 수를 셈하며 칼럼을 쓴다.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찾은 고깃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산문을 쓴다. 몇 해 전 제법 긴 휴가를 내 영국 런던을 찾았다. 살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 대성당과 궁전과 미술관과 박물관…. 그동안 책으로, 사진으로만 보았던 곳이 지척에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하루 이틀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원 잔디밭에서 가져간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마음도 품었다. 그런데 마침 출간을 앞두고 있던 책의 내용을 큰 폭으로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덕분에 영국에서의 기억은 호텔 방의 흰 벽과 벽에 나 있던 작은 창문,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던 누르스름한 앞 건물의 지붕이 전부다. 의외의 사실이 하나 있다. 시인들은 보통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일 그대로를 작품으로 옮기지 않는다. 만약 어느 시인이 극지방을 여행하다 운 좋게 밤하늘의 오로라를 보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움과 황홀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라의 광경을 훼손하지 않고 시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대한 궁리해서 작품을 완성했다 해도 아름다움과 황홀은 쓰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담겨 있지, 읽는 사람의 눈앞에는 펼쳐지지 않는다. 아마 독자들은 시인이 쓴 오로라에 대한 시를 읽으며 ‘좋겠네’ ‘부럽네’ 정도로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여행지에서 찾은 어느 식당의 늦은 저녁 풍경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쓸 수 있다. 낯선 곳을 두리번거리며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때, 식당의 마지막 주문 시간을 조금 앞두고 한 젊은 사람이 옆 테이블에 앉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이내 나온 음식을 허겁지겁 밀어 넣으리라. 이 장면을 시로 쓸 수 있는 것은 시간과 세상과 허기에 쫓겨 밥을 먹어야 했던 순간이 우리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든 애를 쓰든 우리가 잘 간직하고 오래 담아두어야 하는 삶의 한 장면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정말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도 없는 것도 아닌, 어디에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박준 시인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박소란 시 ‘심야 식당’)삶을 소설로 쓸 용기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단순한 열정’은 거칠게 요약하면 ‘유부남과의 불륜 경험담’이다. 출간 후 프랑스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정도다. 아니 에르노는 평생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썼고, 어느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그것은 존재합니다. 그러니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나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말해야 하는 거죠.”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 불리는 이 장르는 자서전과 자전적 소설 사이에 있지만, 둘 중 무엇과도 완전히 같지 않다. 자신의 삶을 미화하는 자서전도 아니고, 사건을 극적으로 가공하는 자전적 소설도 아니다. 오토픽션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두고 정확하게 관찰하는 기록이다. 오토픽션을 쓴다는 것은 그를 향한 스웨덴 한림원의 찬사처럼 “개인적 기억의 뿌리와 소외를 용기와 정확함으로 밝혀내려는” 노력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비단 아니 에르노에게만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작가이며, 우리의 삶 역시 언제나 이야기로 꿰어지기를 기다리는 서 말의 구슬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의 삶은 그 의미와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때 우리는 멈춰서 뒤를 돌아보고, 지나온 점들을 선으로 이어 ‘나’라는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삶-쓰기(life-writing)는 거대한 우주의 무의미에 맞서 우리가 쥐고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 지나온 과거가 존재하고, 매 순간의 선택으로 미래를 바꾸는 이라면 누구나 작가다. 좋은 소식은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쓰일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펜을 들고 무엇이든 쓰자. 나에 관해. 내 인생에 대해. 지금 당장. - 문지혁 소설가건물의 표정을 읽는 시간우리는 발로 바닥을 딛고 서지만, 눈은 늘 벽을 향한다. 건축의 내부는 그곳을 방문하는 일부 사람만 경험하지만, 건물의 외피는 거리를 지나는 불특정 다수와 끊임없이 만난다. 그래서 도시를 경험한다는 것은 어쩌면 수많은 건물의 입면(立面)을 감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여행지의 풍경이나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을 떠올릴 때, 기억의 배경을 채우는 것 역시 겹겹이 이어진 입면의 파노라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도시의 시각적 기호의 난무함 속에 현기증을 느낀다기보다는 그것을 소거하는 데 익숙했다. 매일 다니던 길임에도 건물이 어떤 색인지, 어떤 가게가 있는지,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리지 못하기 일쑤였다. 나에게 도시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무엇이 아니라 내가 도착해야 하는 수많은 점의 집합일 뿐이었던 것이다.늘 나는 걸음을 멈추고 어떤 공간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나에게 보행의 기쁨, 거리의 기쁨을 알려준 것은 다름 아닌 개였다. 우리 집 개가 산책을 나가자고 내 앞에 앉아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이상 나는 나가야 했고, 그를 따라, 정확하게는 그를 이끄는 냄새의 자취를 따라 목적 없이 걸었다. 우리 개가 멈춰 서서 한참 코를 킁킁거릴 때면 나는 시야에 들어오는 건물들을 보게 된다. 저 건물은 콘크리트로 지어졌구나, 빗물 자국이 많이 남았네, 창문이 너무 작은 거 아닌가, 이 골목엔 장미가 많아서 지나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자세히 들여다본 도시의 표정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건물은 수다스럽고, 어떤 울타리는 유머러스하며, 어떤 표지판은 공격적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건물이라는 껍질을 통해 거리 밖으로 새어 나오는 순간을 목격할 때, 비로소 도시가 살아 있다고 느낀다. 어느새 나는 거리의 이미지와 소리, 이야기를 채집하기 시작했다. 멈춰 서서 도시의 입면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글을 쓸 수 있는 단단한 질료들을 만난다. - 박세미 시인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 글쓰기 강좌를 시작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과거 내가 들었던 글쓰기 수업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공통적으로 독서에 대한 조언이 빠지지 않았다. 무조건 읽을 것. 읽지 않는 사람은 쓸 수 없다는 것. 지금도 유효한 진리다. 하지만 ‘책을 읽으세요’라는 당부만으로는 당장 백지 앞에 마주 앉은 이들의 막막함을 해소해 주기 어렵다. 조금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 끝에 수강생들에게 일종의 창작 연습을 제안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각자 소지품을 꺼내 옆사람과 바꾸고, 그 물건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수강생들은 모두 처음 본 사이였다). 막대자, 동전지갑, 민속 장식품이 달린 키링 같은 소지품들이 오갔다. 낯선 사람의 물건을 손에 쥔 이들은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물건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메모를 시작했다. 마치 작은 물건 하나가 한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 것 같았다. 수강생들이 물건으로 상상해 본 인물들은 책에 자를 대고 밑줄을 반듯하게 긋는 사람, 동전까지 꼼꼼하게 챙길 정도로 세심한 사람, 박물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종일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짧은 문장에는 낯선 이가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살아 움직이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었고, 물건의 주인들은 자신과 닮은 듯 다른 인물의 이야기에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 실습의 핵심은 물건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밝히는 ‘탐정 게임’이 아니다. 내가 제안하고 싶었던 것은 그 작은 사물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읽어내는 연습과 실존하는 대상을 향한 배려와 섬세함이 담긴 관찰이었다. 글쓰기에 있어서 관찰 능력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대단한 상상력이 아니라 제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글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일종의 상호텍스트성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내가 마주한 작은 사물이 타인의 삶, 세상의 또 다른 이야기와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하는 일 말이다. 이 연결감을 인지하는 순간, 문장은 독백을 넘어 타인에게 건네는 말, 즉 대화가 된다. 실제로 강의실에서 목격한 풍경이 그러했다. 수강생들이 물건의 주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그들의 문장은 함부로 대상을 재단하거나 단정 짓지 않았다. 타인의 취향에 대한 존중, 배려와 섬세함도 보였다. 흔히 글쓰기에는 무한한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백지 위의 자유. 하지만 제약 없는 자유가 반드시 좋은 글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런 울타리도 없는 자유 속에서 언어는 갈 길을 잃고 겉돌기 쉽다. 오히려 내 글 너머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믿을 때 글은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얻고 더 단단해진다.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권력자가 아니라 실존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런 ‘다정한 제약’이 문장의 섬세함을 만든다. 나는 이 책임과 제약이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더 깊고 섬세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내 문장 뒤에 진짜 삶이 숨 쉬고 있음을 감각하는 것, 나의 창작이 누군가의 세계에 닿는다고 믿고,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가지는 것. 이 긴장감이야말로 글쓰기라는 탐험을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재능을 심어주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법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 너머의 존재를 배려하는 법이나 다정한 책임감으로 문장을 섬세하게 깎아나가는 태도는 얼마든지 함께 나눌 수 있다. 막막한 백지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타자와 교류하는 감각과 그를 향해 말을 건네는 용기가 아닐까. 누군가의 작은 세계를 손에 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이 글 너머에 당신의 시선이 있다는 믿음으로. - 신유진 작가·번역가여백의 글쓰기논픽션의 대가라 불리는 존 맥피의 글쓰기에 대한 책 ‘네번째 원고’ 마지막 장은 ‘생략’이다. 맥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생략 이론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독자가 가을 풍경의 전모를 자기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려면 작가는, 옥수수 노적가리, 꿩, 이른 서리와 같은, 몇몇 단어와 이미지만 전달하면 된다. 창의적인 작가는 장과 장 사이, 절과 절 사이에 여백을 남긴다. 창의적인 독자는 이 여백에 나타난, 적히지 않은 생각을 침묵 속에서 명료화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에이아이)은 여백이 없다. 헤밍웨이 생략 이론의 핵심 문장, ‘빙산의 움직임이 위엄 있는 이유는 수면 위로 8분의 1만 드러났기 때문이다’에 대해 ‘왜 하필 8분의 1이냐’고 물어봤다. 에이아이 클로드는 얼음과 바닷물의 밀도를 제시하며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냥 한번 상상해보라고 하면 좋았을 텐데. 이런 즉문즉답은 오히려 독해를 방해한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바로 답을 내놓는 관계에 여백이 있을 틈이 없다. 인공지능은 매 순간 수면 위로 8분의 8을 드러내려 애쓴다. 읽기는 책의 여백에 쓸 말이 자꾸 떠오를 때 즐겁다. 박숙자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는 한겨레 연재 칼럼 ‘새벽 5시 에이아이 그리고 당신’에서 읽기를 밭고랑을 걷는 행위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읽기는 미로를 헤매는 탐험처럼 언급되기도 하지만 봄 밭의 고랑에서처럼 한걸음씩 움직이며 언어의 결을 따라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따라가다가 읽기는 읽기 이상의 행위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 단어들을 임의로 바꾸지 않고, 그것들이 놓인 자리와 연결의 방식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시간, 서로 다른 세계, 서로 다른 사유의 층위를 섬세하게 연결하는 일입니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박 교수는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의미의 차이를 매끄럽게 지우진 않았는지 경계하며, ‘텍스트의 세계를 구성하는 작가의 ‘한 문장’을 제대로 기억하고 인용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말하기’에도 여백이 있다. 김애란 작가가 지난달 2026. 4. 15일 문화방송(MBC)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말한 망설임 같은 것이다. “인간한텐 있고 에이아이(AI)한텐 없는 것이 망설임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 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고 헤아리는 찰나가 있다. 그리고 그 주저 안에 힘겹게 서 있는 어떤 배려나 품위가 있다. 어느 때는 유려하고 빠른 에이아이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위로가 된 적도 있다.” 손석희 앵커가 2019년 4월4일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에서 고 노회찬 의원을 언급하다 20초간 침묵한 일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사고처럼 보일 수 있는데 어떤 진실과 인간이 서 있는 모습을 우리가 다 봤다고 생각한다. 그때 역시 망설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말과 말 사이에 있는 숨, 표정, 몸짓, 소리, 망설임도, 그 망설임을 읽는 일도 인간의 몫이다. 행간을 읽고 침묵의 의미를 헤아리는 일은 앞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지난 2026. 3월 ‘경험수집가의 시대’를 펴낸 송수진 교수는 제트(Z)세대(1997~2011년생)가 감정, 시간, 관심의 낭비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진단한다. 최대한 아껴서 더 가치 있는 경험에 밀도 있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감정과 시간 낭비를 싫어하지만 콘텐츠는 ‘덕질’한다는 게 송 교수 설명이다. 같은 영화를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한두번이 아니라 여러차례(n차) 관람한다. 이런 문화는 ‘콘텐츠를 반복해서 보고, 미세한 감정을 포착하고, 서로의 해석을 나누며 경험을 덧입히는 문화’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자동판매기처럼 버튼만 누르면 답을 내놓는 시대에도 콘텐츠에서 의미를 찾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경험은 돈을 여러번 지불할 만큼 즐겁다는 뜻일까. 생략과 침묵조차 제대로 읽고 싶어지는 좋은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까. 헤밍웨이는 충분히 잘 알고 쓸 때 생략도 빛난다고 말한다. ‘작가가 자신이 쓰는 것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아는 걸 생략해도 좋다. 작가가 충분히 진실하게 쓰고 있다면 독자는 작가가 (생략하지 않고) 직접 썼을 때만큼이나 강렬하게 느낄 것이다.’ 작가가 그냥 잘 몰라서 생략한 거라면? ‘글에 구멍만 만들 뿐이다.’ - 김선식 한겨례신문 알파랩부장 한 권의 책이 ‘성벽’을 무너뜨리리라고 믿은 미셸 푸코난 폭약 전문가다 전쟁·파괴에 쓰일 뭔가를 만든다"미셸 푸코가 1961년 '광기의 역사'를 출간하자 르몽드는 젊은 철학자이자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를 인터뷰했다. 박사 학위 논문을 책으로 만든 것에 비하면 상당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푸코는 철학자나 사상가로 자신을 포장하려 들지 않았고, 특히 '작가'란 표현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저는 폭약 전문가입니다. 궁극적으로 포위 공격이나 전쟁, 파괴에 쓰일 수 있는 무언가를 제조합니다. 신간 '미셸 푸코의 말'은 푸코와의 대담을 실은 책이다. 푸코의 사상적 기반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작가 혹은 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담았다. 푸코는 왜 자신을 저렇게 거칠게 정의했던 걸까. 푸코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파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돌파하고, 전진하고,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광기의 역사')을 진정으로 물질적인 일종의 폭풍 같은 것으로 구상했고, 지금도 그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푸코는 1950년대 중반 정신병리학을 공부했다. 그 덕분에 생트안 병원을 학생 신분으로 2년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심리검사를 하는 환자들과 그들을 정기적으로 회진하는 의료진을 함께 관찰했다. 그건 '광인과 권력의 관계'라고 그는 느꼈고, 그 결과물이 책 '광기의 역사'였다. 광기가 배제와 치료의 대상이 된 건 근대 서구사회부터였다. 권력은 자신을 세우기 위해 광인을 타자화했다는 이 책의 결론은 이렇게 등장했다. 푸코는 자신의 책이 '폭약'이 될 줄 예감했을까.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책을 '지뢰 혹은 폭발물 꾸러미'라고 표현한다. 글쓰기는 이러한 지적 파괴를 위한 수단이지, 글쓰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고도 봤다. 그는 자신의 책을 '연장통'에 비유한다. 사람들이 기꺼이 그것들(자신의 책들)을 열고서 이런저런 문장, 이런저런 아이디어, 이런저런 분석을 마치 나사 돌리개나 볼트 조이개처럼 이용해서 권력 체계들, 심지어 제 책들을 산출한 체계들까지도 합선시키고 무력화하고 망가뜨린다면 그야말로 좋은 일이겠죠. 제 꿈은 폭탄처럼 강력하면서도 폭죽처럼 아름다운 폭발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와 대담을 나눈 인터뷰이 로제폴 드루아는 푸코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마치 도처에 '비밀 서랍'을 숨겨둔 인물 같다고, 그건 그가 자유롭게 존재하는 방식처럼 보인다고. 이어 그는 푸코를 오디세우스에 비유하기